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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판결문 쉽게 써달라” 장애인 요청에, 판사는 삽화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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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우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회
742회
작성일
23-01-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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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쉽게 써달라장애인 요청에, 판사는 삽화를 넣었다

등록 :2023-01-10 07:00

정혜민 기자 사진

 

원고 청구 기각원고가 졌습니다

장애인 읽기 쉬운판결문 등장한 사연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청각장애인 ㄱ씨가 수어통역이 필요한 자신이 다른 장애인과 동일한 면접시간을 배분받은 것은 차별이라며 서울 강동구청장을 상대로 낸 장애인 일자리사업 불합격처분 취소 소송 선고 주문이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 제11(재판장 강우찬)는 여느 판결문과 달리 괄호 안에 주문 내용을 쉽게 설명한 문장을 따로 적었다. 전체 12쪽 분량 판결문은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문의 내용으로 시작했다. 4쪽 가까운 분량이었다. 판결문에는 이례적으로 삽화가 등장했다. ‘같은 높이 받침대에서 키가 작은 사람만 경기를 보지 못하는그림과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맞춤형 받침대에서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그림이 제시됐다. 동등한 기회만을 제공하는 기회의 평등, 결과의 동질성을 보장하는 결과의 공정차이를 알기쉽게 설명하는 삽화였다.

 

왼쪽 그림과 같은 상황(기회의 평등)이 원고가 겪은 상황이라면, 평등원칙에 위배돼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세심하게 판결문을 써내려간 재판부는 청각장애인인 원고와 다른 지원자들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모두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며 원고의 청구는 기각했다. 다만 “(원고의 상황은) 앞에서 본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발 받침대의 높이가 모두 같지만 세 사람 모두 경기를 관람하는 데에는 장애가 없는 높이인 경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기 쉬운 용어로 써달라는 ㄱ씨 요청에 따라 어렵고 딱딱하고 건조한 판결문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사법부가 장애인을 배려해 친절한 판결문을 작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영국 등 일부 국가에는 전문 인력이 있어 쉬운 판결문 작성을 돕지만, 한국 법원에는 이런 제도가 없기 때문에 재판부가 가욋일로 노력한 결과다.

 

재판부가 이런 노력을 기울인데는 재판장 개인의 경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정기적으로 각국의 권리협약 이행 상황 등을 점검하는데, 지난해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심의에 재판장인 강 부장판사가 대한민국 대표단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이어 다음달인 9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다양한 권고안을 담은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점자, 수어, 읽기 쉬운 형태, 음성, 화면해설 등 사법 절차 전반에 걸쳐 보완·대체 정보 및 의사소통 수단을 마련하라는 권고가 포함됐다. 직접 참석한 회의에서 나온 권고안을 따르겠다는 재판장의 의도가 판결문에 담긴 삽화와 친절한 구어체 문장에 담긴 셈이다. 법원행정처 쪽은 장애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판사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취지대로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이지 리드판결문을 작성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장애인 사법 지원과 관련해 여러가지 콘텐츠를 개발하는 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