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인터뷰| 체포 앞둔 박경석, 지하철행동은 꺾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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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2-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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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체포 앞둔 박경석, 지하철행동은 꺾이지 않는다
기자명 강혜민 기자
입력 2023.02.20. 15:34
경찰 ‘최후통첩’마저 거부한 박경석 전장연 대표
“매일 지하철 탈 힘 있다, 이게 우리의 계획”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16일,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박 대표에게 다가와 ‘17일까지 출석하라.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엔 20일까지 출석 여부를 밝히라’고 통보했다. 20일 이후에도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 후 연행하여 강제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구속할 사안으로 판단하면 48시간 이내 검찰을 통해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법원은 구속적부심사를 한다. 만약 법원이 구속수사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정하면 그는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경찰 출석요구서에 따르면, 박 대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8건의 사건을 조사받아야 한다. 모두 전장연이 주최한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이었다. 그는 국회 앞에서, 서울시의회 앞에서, 종로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무수히 많은 지하철 운행(대부분 대통령실과 인접한 삼각지역)을 방해했다. 쇠사슬과 사다리를 목에 걸고서 지하철을 막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언론을 뒤덮던 시기였다. 언론은 시끌벅적했고 전장연 시위에 출근길이 막힌 시민들의 욕설과 혐오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장애인 인권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유례없이 뜨거워서 힘찬 도약을 기대할 법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의 상당 부분을 수용했음에도 최종 통과되지 못한 이유는 기획재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쓰라린 결과였다. 올해에도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이어가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관용 선포 이후 지하철 시위 현장에선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은 장애인 활동가들에게 그간 억눌렸던 분노를 표하듯, 욕설과 폭력을 쓰는 것에 거침이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담한 것은 전장연이 있는 역사엔 정차하지 않는 지하철이다. 전장연은 “비장애인의 시민권 열차에 장애인을 탑승시켜 달라”며 요구하고 있다.
그가 경찰 조사를 거부해온 이유도 그와 같다. 그가 조사받으러 간 경찰서에는 장애인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1997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아래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공공기관은 승강기 등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는 ‘서울시 내에 있는 경찰서 31곳의 편의시설 전수조사와 설치 계획을 밝히면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은 답변 없이 ‘최후 통보’만 보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강조한 ‘법질서 확립’은 저 자신만 비껴갔다.
18일 토요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전장연 사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하는 내내 기자가 준비해 간 땅콩과자를 한 알씩 입에 집어넣으며 예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20일 이후 구속될 수 있다는 긴장은 저만치 미뤄둔 사람처럼. 2001년 지하철 철로에 내려가 지하철을 멈춰 세웠던 짙은 회색 머리칼의 사내는 2023년 예순네 살이 되었다. 이제 그의 머리칼과 수염에서 검은색은 사라졌다. 하얗게 흔들림 없는 그는 여전히 지하철을 탈 때마다 ‘○○○○’라는 말을 듣는다. 22년 전에도 들었던 그 말을 곱으며, 그는 출근길 지하철을 이 시대의 전선으로 만들었다.
- 지금 심경이 어떤가.
심경보다는… 1996년 9월에 김영삼 대통령이 루스벨트 상을 받았다. 그때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전장연 전신이 되는 조직)에서 미국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장애인 인권에 대해 아무 기여도 안 한 사람한테 왜 루스벨트 상을 줬냐, 생색내기 아니냐, 장애인권 기만하는 미국은 각성하라’ 하면서. 그 전년도인 1995년에 최정환, 이덕인 열사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문민정부는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5분 정도 피케팅 했나, 몇 마디 외치지도 않았는데 피켓 들자마자 청량리경찰서로 모두 연행됐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유치장에서 1박 2일 자고 나왔다. 백골단 문화가 아직 남아있을 때여서 경찰이 무척 거칠었다. 그래도 그 시절은 깔끔했다. 강자(미국)한테 덤비면 장애인이건 뭐건 ‘얄짤’ 없었으니(웃음). 두 번째 유치장 갔을 때가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로 서울역 철로를 점거했을 때다(2001년 2월 6일). 벌금도 300만 원 냈다. 이후로는 셀 수 없을 만큼 유치장에 들락날락하고 벌금 안 내서 구치소도 서너 번 갔다 왔다. 길 가다가 지명수배자라고 잡혀간 적도 있다.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에 라카로 낙서하기도 하고(웃음).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해 어떠한 처벌도 피해 간 적이 없다. 앞으로도 피해 가지 않겠다. 그런데 왜 국가는 법을 안 지킬까? 법에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되어 있는데 국가는 법을 지키지 않고 처벌받지도 않는다. 여기에 대해 아주 ‘심한’(목소리가 커진다) 억울함이 있다.
- 그래도 그전까지 경찰 조사는 받지 않았나. 이번에는 왜 경찰 조사까지 거부하는 건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때문이다. 전장연 시위에 대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고 했는데 우리를 마치 흉악범 처리하듯, 반인륜적인 범죄 집단처럼 이야기하며 혐오를 조장했다. 우리 보고 법을 안 지킨다고 했는데 경찰청도 법을 안 지켰다. 1997년에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됐는데 서울경찰청이 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는 예산 타령, 핑계 대지 말고 ‘법에 명시된,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모든 편의시설을 설치하면 나가겠다’고 한 거다. 그런데 경찰청이 꼼수를 썼다. 남대문서는 돼 있으니 이쪽으로 오라고 한 거다. 웃기지 마시라고 해라. 장애인의 시민권을 보장하라고 외칠 때마다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이 아닌 ‘시혜와 동정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있다. 그걸 바로 지금 서울경찰청이, 국가 권력이 앞장서서 하고 있다.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풀어갈 공공기관으로써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경찰 수사를 피할 수단도 없고, 도망갈 곳도 없다. 비장애인이면 산이든 어디든 숨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장애(척수장애)를 가진 사람은 도피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도 안 되고 교통수단도 없다. 해외 도피는 꿈도 안 꾸고 증거 인멸은 생각도 안 한다. 어차피 다 털면 털릴 텐데.
- 장애인권리예산 관련해서 지난해 국회에서는 정부예산안보다 106억 원 증액된 게 전부다. 정부예산안은 자연증가분을 반영한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기획재정부가 반대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평가하기도 창피하다. 그냥 쌩 무시당한 거지.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장애인의 저항’은 저항으로도 보지 않는 거다. 그냥 바퀴벌레 한 마리 기어 다니는 걸로 여기는 것 같다. 인간의 존엄을 그렇게 취급하는 기획재정부에 무슨 말을 하겠나.
- 결과적으로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없는 구조가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전장연 시위를 멈추라는 정부 탄압은 거세지고 있다.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탄압이 거세질수록 윤석열 정부의 지지도는 올라갔다. 그러한 표적을 전장연으로 잡은 거고,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도 올라타서 우리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길게 보자면 그렇지 않은 정권이 있었나? 태도는 똑같았다. 김대중 정권 때는 지하철 철로에 장애인들을 내려줬다고 김도현 활동가(당시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가 구속됐다. 여야 정권을 가리지 않고 많은 노동운동가들도 잡혀가지 않았나. 다만 지금이 다른 점은 혐오로 갈라친다는 점이다. 그걸 이용해 지지율 상승이라는 정치적 이득을 노리니 더 악질이다. 사법의 칼이 공정과 상식이 아니라 무당의 칼이 되어 버렸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무당의 정치를 하고 있다.
- 전장연뿐만 아니라 노동·시민사회단체에 대한 탄압이 거세다. 민주노총 압수수색과 함께 현재는 국고보조금에 대한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면서 비영리민간단체 전수조사를 하고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엔 민주노점상전국연합(아래 민주노련) 활동가 여섯 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조금씩 결은 다르지만 민주노련 사건은 어처구니가 없다. 2014년 사건까지 엮어 1심에서 법정 구속한 것을 보며 어처구니없는 공포를 느꼈다. 공포 앞에서는 무서워야 하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차는 거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샅샅이 뒤지는 중인 것 같다. 그렇다고 힘없는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싸워온 역사의 흐름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전장연도 마찬가지다.
-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선택은 그들이 하는 거다. 그들이 권력자니깐. 구속할지 풀어줄지, 팔을 칠지 목을 칠지, 다리를 자를지 가슴을 찌를지. 그들 방향에 따라 우리는 창으로 막을지 결정할 텐데 무기가 많지 않다. 대응할 수 있는 무기는 단 하나, 매일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는 것이다. 매일 지하철에 나갈 힘은 있다. 이것이 우리 대응 방법이다.
- 구속될 수도 있는데 1년 넘게 지속되어 온 지하철행동의 힘이 흔들릴 것에 대한 걱정은 없나.
없다. 하나도 없다(단호한 목소리로). 매일 아침에 몇 명이라도 나와서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 되는데 이게 왜 흔들리나. 아주 쉬운 일이다. 이건 노들야학 학생도 할 수 있다(그는 24년간 노들야학의 교장이었다). 난 아주 쉬운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잊히지만 않으면 된다. 박경석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한순간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3월 23일(전장연은 이날까지 기획재정부에 2024년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부터 장애인 시민권을 쟁취하는 날까지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한 명이 끝까지 지하철을 탈 것이다. 그렇게 5년 타면 윤석열 정부가 가고 그다음 정권이 오겠지. 이게 우리의 대응 전략이다.
- 장애인운동을 시작한 후 여러 정권을 경험했다. 지금은 어떤 시간을 지나는 것 같나.
1988년 양대법안 투쟁(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을 장애인 대중운동의 시작으로 평가하는데 그때가 노태우 정권이었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가 왔다.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 때만 해도 경찰이 영안실을 해머로 뚫고 와서 장애인(이덕인)의 시신을 탈취해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이 분명 더 낫다. 그만큼 인권‧시민운동가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그러한 인권과 민주주의의 질서가 툭 떨어졌다. ‘더 폭력적이다, 더 두들겨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