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출금’ 대신 ‘돈 찾기’로…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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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우물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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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3-01-3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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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금’ 대신 ‘돈 찾기’로…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하라
기자명 하민지 기자
입력 2023.01.27. 22:23
은행업무도, 선거공약집도 발달장애인에겐 너무 어렵다
그런데 쉬운 정보를 제공하라고 법에 이미 나와 있다
정부는 왜 법대로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는 이미 잘하고 있다
정부는 빨리 쉬운 정보의 기준을 만들어라
이 기사는 발달장애인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쓴 기사입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이해하기 쉬운 정보 제작 기준’을 참고했습니다.
-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만 담는다.
- 단순한 문장 구조로 짧게 작성한다.
- 구어체로 작성한다.
- 줄임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 복잡한 단어, 어려운 단어, 전문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 어렵지만 사용해야 하는 단어는 쉬운 설명을 함께 제공한다.
- 어려운 단어가 많은 경우 별도의 단어목록을 만들어 설명을 제공한다.
-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로 기재한다.
- #, &, ~, % 등의 문장부호 사용을 자제한다.
작년에 대통령도 뽑고 시장도 뽑았는데, 모두 투표 잘하셨나요? 박경인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발달장애인인데요, 투표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합니다. 후보자의 공약에 어려운 말이 많아서 이해하기 힘들었대요. ‘기성세대, 내로남불, 불공정, 엄단’ 같은 어려운 말 때문에 후보자 공약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해요. 투표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박경인 활동가는 스마트폰을 개통하거나 통장을 만들러 가도 온통 어려운 말밖에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투표도 쉽게 하고 스마트폰이나 통장도 쉽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부가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은 법에도 적혀 있습니다. 국제기구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도 우리나라 정부에 이야기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모든 정보를 쉽게 알려 주라고요. 그런데 정부는 왜 법대로 하지 않을까요? 이런 내용을 다룬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1월 13일 낮 2시, 서울시 영등포구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열렸어요.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 이해할 수 없는 정보는 의미 없는 정보다
토론회에서는 박경인 활동가가 제일 먼저 발표했습니다. 주제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박경인 활동가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가 23살에 탈시설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딜 가도 어려운 말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활동지원서비스부터 신청하려고 했습니다. 어디에 가야 신청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신청했습니다. 박경인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류를 작성하고 종합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사인을 하라는 곳에 사인을 했습니다. 내가 1개월 동안 쓸 수 있는 활동지원시간이 150시간인데 이 시간을 매일 어떻게 나눠 써야 하는지도 계산하기 어려웠습니다.”집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박경인 활동가는 지원주택에 살고 싶었습니다. 지원주택은 보통의 집과 달리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집입니다. 지원주택 모집 공고문을 보는데 ‘임대, 보증금, 소득, 자산, 자격심사’ 같은 어려운 말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뽑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돈 뽑는 기계의 화면을 보면 ‘예금, 출금, 계좌, 송금, 조회’라고 나오는데, 이런 말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박경인 활동가는 “‘돈 찾기, 돈 보내기, 돈 넣기, 얼마 있는지 확인하기’처럼 쉬운 단어로 나온다면 혼자서도 은행 일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외에도 병원에서 문진표를 쓸 때, 주민센터에서 복지서비스를 신청할 때, 스마트폰 계약서를 쓸 때, 직장을 구하고 근로계약서를 쓸 때, 선거 기간에 후보자의 공약집을 볼 때 너무 어려워서 못 알아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박경인 활동가는 발달장애인이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차별받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달장애인도 국민으로서 여러 정보에 충분히 접근하고, 정보를 잘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발달장애인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정보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의미 없는 정보나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만들어진 자료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발달장애인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여러 자료를 만듭니다. 그러면 복지정책의 대상인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만들어야 합니다. 발달장애인 앞에 세워진 장벽을 허무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을 존중하는 최고의 방식
박경인 활동가 다음으로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가 발표했습니다. 발표 제목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의 방향과 원칙’입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왜 제공해야 할까요? 발달장애인이 소통을 못 해서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말입니다. 김기룡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소통을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쉬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발달장애인을 교육받고 훈련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보면 안 됩니다.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쉬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을 존중하는 최고의 방식입니다.”
- 쉬운 정보를 제공하라고 법에도 나와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은 법에 나와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법(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10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서울시, 경기도처럼 국가보다 작은 단위의 지역)는 (길어서 여기 내용 뺌)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널리 나눠 줘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법 시행령(법 내용대로 해나가기 위해 만든 자세한 규칙) 4조 2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정보를 작성하는 경우에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하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은 조규홍 씨입니다. 법에 적힌 말을 쉬운 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요한 정책정보를 반드시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쉽게 제공해야 합니다. 쉬운 정보의 기준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합니다.’ 이런 내용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도 우리나라 정부에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가 장애인의 권리를 얼마나 보장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폈습니다. 그 결과를 문서로 만들어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그 문서를 ‘최종견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있는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정부는 장애인에게 읽기 쉬운 말, 이해하기 쉬운 말로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 조규홍 장관은 쉬운 정보의 기준을 만들어라
우리나라 법에도 나와 있고 국제기구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도 강조하는데, 정부는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김기룡 교수는 “정부가 발달장애인법 시행령 4조 2항을 안 지킨다”고 비판했습니다. 아까 살펴본 대로, 발달장애인법 시행령 4조 2항대로 하려면 조규홍 장관이 어서 쉬운 정보의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안 만들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지 않으니 여러 민간단체에서 스스로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김기룡 교수는 정부가 쉬운 정보의 기준을 세워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국가의 기준에 맞춰 발달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김기룡 교수는 토론회에 참석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을 보호하라고 만든 국가 기관) 직원을 바라보며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건복지부에 ‘쉬운 정보의 기준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해 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만약 선거 기간에 후보자 공약집은 쉬운 정보로 제공됐는데 은행의 돈 뽑는 기계에는 여전히 어려운 말만 있다면 어떨까요? 사는 게 너무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김기룡 교수는 정보의 범위를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정보”로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아까 살펴본 발달장애인법에는 ‘중요한 정책정보’만 쉬운 정보로 제공하라고 돼 있네요. 그렇지만 잘 살기 위해서는 ‘일상의 모든 부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말대로 ‘모든 정보’를 쉬운 정보로 제공해야 합니다. 김기룡 교수는 “정보의 범위 역시, 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정하면 됩니다. 보건복지부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정보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수연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도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8년 전인 2015년에 쉬운 정보에 관한 연구도 해놨고, 여러 단체에서 스스로 기준도 만들어 놨으니 이제 의지만 가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수연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발달장애인은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여전히 발달장애인을 위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일입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 다른 나라는 이미 쉬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