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 서울시, 전장연 압박하며 ‘탈시설 조이기’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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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3-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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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전장연 압박하며 ‘탈시설 조이기’ 본격화
기자명 복건우 기자
입력 2023.03.09. 18:57
서울시, 전장연 소속 단체만 회계자료 제출 요구
자립생활주택·권리중심공공일자리 실태조사 실시
김종길 국힘 시의원 요구 “탈시설 흐름 파악하려고”
전장연 “탈시설 정책 겨냥한 표적 수사 중단하라”
서울시가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및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소속 단체에만 회계자료 제출 등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일 하루 동안 서울시는 전장연 소속 단체 160여 곳의 명단을 요구한 데 더해 자립생활주택 관련 회계자료 13년치를 퇴근 30분 전에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현장 실사를 추가로 진행한다며 2020년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작성된 모든 자료를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최근 탈시설을 둘러싼 서울시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러한 움직임은 탈시설장애인 관련 예산 사용을 문제 삼아 탈시설에 본격적인 제동을 걸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전장연은 “의도적인 표적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 서울시 ‘전장연 소속 단체’만 자료 제출 요구
자립생활주택은 탈시설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일정 기간 자립생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임시 주거 공간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이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아 운영된다. 서울시의 경우 위탁기관 40곳에서 총 64개소를 운영하고 있다(2022년 12월 기준). 비마이너 취재 결과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는 지난 2일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 소속 센터 11곳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주택 14개소의 예산 및 지원금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9일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따르면 구청은 당일 오후 5시 30분경 메일을 보내 13년치(2011~2023년) 서울시 보조금 지원 내역을 6시까지 제출해야 한다고 센터에 알려왔다. 각 자치구는 오는 20일부터 2주간 자립생활주택 지도 점검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위탁기관 40곳 중 전장연 소속 단위인 서울시협의회 센터 11곳을 콕 집어 관련 자료를 상세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현재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정하는 국고보조사업의 자료 보관기간이 5년인 것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요구 범위는 다소 무리가 있다.
같은 날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는 7일부터 나흘간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현장 실사를 진행한다며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아래 전권협)에 최근 3년간 자료를 5일 내로 준비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작성된 모든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 셈이다. 전장연 주도로 2020년 7월 서울에서 처음 시작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그동안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여겨져 온 최중증장애인과 탈시설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을 사실상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것인데, 이러한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아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경기, 전남, 전북, 춘천 등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서울시는 이에 더해 전장연 소속 단체 160여 곳의 명단을 유선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 측 반발이 이어지자 서울시는 자립생활주택과 관련해 8일까지 5년치(2018~2023년) 자료를 내는 것으로 검토 범위를 조정했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역시 13일부터 닷새간 현장 실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 서울시에 자료 요구한 김종길 시의원 “탈시설 흐름 파악”
7일 서울시 설명을 종합하면 이러한 요구의 배경에는 김종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의 자료 요청이 있었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자립생활주택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운영 전반을 살펴본다는 취지다. 김 의원은 8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그동안 장애인 정책이 이어져 온 흐름을 파악하려면 자립생활주택과 관련해 10년 정도의 자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탈시설을 급진적으로 추진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런 부분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려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에 대해서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한다며 전장연 시위에 불려나가 장애인 권리를 외치는 것까지 일자리로 봐야 하느냐”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왜곡하진 않는지도 같이 확인해보려 한다”고 했다. 이어 김 의원은 “서울시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업의 예산 집행을 감독하는 것은 시의원이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고, 정책 평가를 위해 자립생활주택과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관한 자료 요구권을 행사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자료 요청이 ‘표적 수사’가 아니라고 맞받았다.
한편 서울시는 앞서 2월 21일 탈시설 장애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내부적으로 조사팀을 꾸려 탈시설 과정의 적정성, 생활 만족도, 건강 상태 등을 살펴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여당과 보수 언론에서 탈시설 개념을 왜곡하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장애인거주시설을 방문하는 등 시설 정책을 옹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전수조사는 기존의 탈시설 정책을 크게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다. 자립생활주택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역시 탈시설장애인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시의 현장 실사 결과에 따라 탈시설 정책에 적지 않은 수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전장연 “이례적이고 강압적인 표적 수사”
전장연은 6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청량리 방향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전장연 소속 단체를 겨냥한 ‘표적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자료 제출을 요구한 김 의원을 향해서는 “사전에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자료 제출 범위와 기한도 적절하지 못했다”면서 그 방식이 “이례적이고 강압적”이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서울시가 특정 단체를 압박할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수립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계획’에 따라 장애인에게 필요한 집과 일자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은 서울시협의회 사무국장은 “여러 단위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중에서 서울시협의회 소속 센터 11곳만 조사하겠다는 것은 사실상의 표적 수사가 아니냐”면서 “서울시는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주거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정규 전권협 정책국장은 “서울시에서 보조금이 지원되는 만큼 매년 정기적인 실사를 진행한 뒤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왔는데, 조사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갑작스럽게 3년치 자료를 보고하라는 건 행정권 남용이나 다름없다”며 “서울시는 앞서 전권협과 협의한 기준에 따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평가하고 최중증장애인과 탈시설장애인을 차질 없이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서울시가 전장연 소속 단체 회원 명단을 요구한 데 더해 특정 단체만 콕 집어서 3년 전 활동지원 출근부까지 조사하겠다고 한다”며 “탈시설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이러한 방식의 폭력적인 조사가 아니라 소수자 권리에 중점을 둔 지원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와 면담해 전장연 소속 단체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방식에 항의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김 의원은 “임시회가 끝나는 10일 이후 날을 잡고 만나서 전장연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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