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독일은 기차가 늦는다고 화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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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9-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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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기차가 늦는다고 화내지 않는다
‘2023년 장애청년드림’ 중장비팀 독일 자유연수-①
기자명기고/주시현 입력 2023.09.07. 16:38
최근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함께하는 장애청년 해외연수 프로그램 ‘2023년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가 마무리됐다. 장애청년드림팀은 지난 2005년 시작된 국내 최초의 장애청년 해외연수 프로그램으로 연수 비용을 전액 지원하며, 지금까지 996명의 청년들이 참여해 37개국을 살펴보고 개선 방향을 국내에 전하는 전도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올해로 1,000번째 도전자를 맞이한 장애청년드림팀은 이제 일상에서 떼어낼 수 없는 디지털IT 기술을 모두가 누리고 삶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해외사례를 조사해 청년의 인식을 확대하고 국내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Digital IT for Humanity!’를 대주제로 선정한 뒤 6개 팀이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6개 팀 중 장애청년과 비장애청년 각 1명이 팀을 이루어 도전하고픈 해외 장애 이슈로 연수를 떠난 자유연수 3팀의 기고를 연재한다. 첫 번째는 독일 연수를 마친 ‘중장비팀’이다.
장애청년드림팀 18기, 우리팀(중장비, 자유연수)은 총 5박 6일간(8.1~8.6) 독일 헤센주에 위치한 소도시 마르부르크(Marburg)로 떠났다. 연수 주제는 ‘대학 내 장벽 없는 삶: 마르부르크시 사례를 통한 대학 및 지역사회 접근성 탐구’였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소속한 중앙대학교가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에서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완전한 배리어프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중앙의 장벽을 무너뜨릴 비책’을 줄여 ‘중장비’라고 팀 이름을 지었고, 장애청년드림팀을 계기로 중앙대의 실질적인 변화를 일궈내겠다는 목표를 보여주고자 했다.
가장 먼저 국외 대학 모델을 찾겠다는 일념 하에 조사를 진행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시 (Blindenstadt)’라는 별칭이 있는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를 찾게 됐다. 당초 우리가 기획했던 것은 유관기관 세 곳과의 인터뷰였다. 그러나 그 중 블리스타(blista, 세계적인 시각장애인 역량센터)는 예정된 국제회의로 인해 현지 연수 기간 중 방문이 어렵게 되었다. 결국 직접 방문 면담을 포기하고, 줌 인터뷰를 기약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수 기간에는 나머지 두 곳,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과 지자체 장애자문위원회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일정은 이튿날부터 시작되었다. 독일 연수의 첫날은 특별한 일정 없이 인천에서 마르부르크로 이동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과 독일의 유의미한 차이점 한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기차가 늦는다고 화내지 않는다. 독일인의 느긋한 심성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도시철도 시위를 다룬 언론은 ‘혼란’과 ‘불편’을 강조했다. 몇몇 정치인들은 시위하는 장애인을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는 흉악범으로 묘사했다.
이것이 어떻게 통할 수 있었을까? 출근길 시위에 자신의 일상과 권리가 침범당했다고 분노하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평범한 일상에서 배제되고 거리로 내몰린 장애인 시민을 이해하는 시민은 드물다. 서울의 거리는 미성숙한 시민 사회의 초상이다. 공동선은 도덕을 망각했고, 정치는 광장을 포기하고 돈이 되는 투전판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느덧 타인을 일상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대중의 관습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연수 첫날에 목격한 독일의 일상은 이제껏 겪어 온 서울의 것과 퍽 달랐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마르부르크 중앙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트램을 환승할 때였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의 경유지로 수많은 열차와 인구가 모여드는 구심점이다.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올 때는 역무원의 도움 덕에 양손에 짊어진 캐리어와 휠체어의 이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지만, 이때는 눈 앞에 펼쳐진 복잡한 풍경을 보자마자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그토록 가득한 역내에서 누군가 우리를 먼저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은 우리의 예상을 상냥히 깨뜨렸다. 기관사가 차창 밖으로 몸을 반쯤 끄집어내더니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질문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하기도 잠시, 재빨리 열차에서 내린 기관사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었다. 이어서 기관사는 열차와 승강장 사이 단차를 이어줄 경사로를 찾다가, 지금은 경사로가 없으니 자신이 휠체어를 들어 올려 도와주어도 괜찮을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살피라고 말해 두겠다고 했다. 열차는 출발 예정시간보다 늦게 출발했다. 기관사가 우리만 도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와 승무원들은 열차 안팎을 누비며 승객들을 도왔다. 모든 승객이 자리 잡은 후 트램은 비로소 역을 떠났다. 트램 내부는 조용했다. 불만 섞인 중얼거림 같은 것은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화내지 않았다. 우리가 휠체어를 들어 열차에 탑승하는 것을 힐끔거리거나 빤히 쳐다보는 일도 없었다. 기꺼이 도움을 주는 이는 많았지만, 묻지도 않고 휠체어에 손을 대는 사람은 없었다. 장애인이 오르느라 연착되는 열차도 기꺼이 자신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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