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소속의 초기화, '다시 0부터'를 반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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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1-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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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의 초기화, '다시 0부터'를 반복하다
정신적 장애인에게도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에 더 신경 쓰일 평판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세이 입력 2024.01.29 16:03 수정 2024.01.29 16:06
성인기 이후의 신경다양인과 정신적 장애인들 입장에서는 많이들 그렇겠지만, 이제 내 삶의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나는 지난 삶의 시간동안 사회의 암묵적 규율들을 천천히 습득해가며 ‘사회화’ 되는 과정들을 서서히 거쳐 왔다. 한편으로는 살기 위해 그런 사회적 틀에 스스로를 끼워 넣자고 나서던 때도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번 글의 주제인 ‘평판’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학교에 다니게 되고, 새 학년 새 학기인 3월부터 같은 반 학생들끼리 서로를 인식하고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이상한 모습으로 여겨질 면을 보이게 되면 어린 나이부터 내 평판이 깎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러면 학교생활에 탈이 생긴다는 것을 습득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매번 반복되면 점점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되고 만다. 사회적 맥락에 맞는 행동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힘들어하던 시절, 이 과정에서 학년이 올라가면서 평판 깎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던 ‘가장 사회적인’ 일은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인 듯 있으려고 애쓰는, 소통에 먼저 기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개선 대책’에 대해 보이는 것, 즉 사회적 기술이라는 부분에서 진전되어가던 게 아예 없던 건 아니었고 그렇게 스스로를 조금씩 다듬어갔지만, 이전에 문제점이 더 드러나던 시절의 나를 잘 알던 동급생들이 과연 가만히 있었을지는 모두의 예상대로다. 초등학생 때는 부모님 직장 소재지를 비롯해 여러 이유로 전학을 몇 차례 다녔었다. 그러다 보니 전학을 특이한 일로 여겨지지는 않았고, 스스로 보다 더 나은 인간관계를 새로 만들 수 있겠다 싶으면 나의 이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것에 대해 이제 ‘다시 0부터’라는 뭔가의 기대감이 들었다. 새로운 학교에 소속되어 시작하면 ‘여기선 이미 포기 상태인 안 좋은 것 청산하고’ 더 나은 상황 속에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오고,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비교했을 때 분명 많은 점에서 달라졌다. 현시점에서 타고난 자폐 특성과 이후 얻게 된 정신(사회심리)장애를 함께 갖고 있는데, 컨디션 난조나 스트레스가 많이 심할 때만 아니라면 나는 크게 사람이 ‘문제 있어’ 보이기보단 그저 내향적인 면이 우세하고 자기 세계를 좀 갖고 있는 듯 보이는 그런 사람쯤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또한 이따금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어울리고 있는 모습쯤은 이제 스스로도 그리 어색할 것 없게 여길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저런 걸 보고 장애에서 ‘치유 성공’이 된 양 180도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도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친구를 처음 사귈 수 있게 된 고등학생 시기, 그리고 성인기 이후에도 사회 속에서 돈 버는 일터 얘기까지 가기도 전에 같이 어울려 노는 취미활동에서의 인간관계마저 직감적으로 느끼기에 내가 겉도는 것만 같던,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던 인간관계가 지속되고, 앞으로도 역시 잘해야 계속 여기까지일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혹여 실수하면 지금 위치에서 어릴 적 위치로 평판이 추락할 것 같다고 느껴지고, 다시 해 보고 싶은 고도의 불안과 강박도 함께였다. 그 뒤엔 직업학교 포함 시 인생 통산 자퇴 횟수 3회의 ‘진기록’을 세운 대학생활과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커리어’는 근처도 못 간 직업생활 등이 이어졌다. 이어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자주 빠져들게 되는 정서가 지금의 내가 하던 일은 나의 나태와 안 좋은 컨디션으로 인해 단단히 잘못되고 있고, 이미 틀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폐기해 엎어버리고 새로 더 나은 내 컨디션을 발휘한다면 비장한 각오로 다시 좋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의 맥락에서 이번 주제와 같은 ‘그 정서’였다. 조금 다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다분히 결이 비슷한 것이 참 천성처럼 일관적인 부분이구나 싶어지는 면이 스스로 보이게 된다. 한편으로는 어릴 적의 나는 자폐 특성의 맥락에서 저런 사고를 했겠지만 지금 나의 이 사고는 정신장애의 맥락에 가까워 보인다는 차이를 보면 '정신적 장애인'으로서의 경험 공유에 있어서 서로 ‘다양성답게’ 다른 점이 있듯 공감으로 연결될 여지 또한 가능하리라는 점이 다름 아닌 스스로의 사례를 통해 신경다양성 담론에서 깨닫게 되는 바가 있다고도 느껴지게 된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제목과 같은 이 정서를 이번 글의 주제로 정하게 되었다. 좋은 평가보단 그 반대의 피드백을 받는 게 내면화되어 익숙해지기 쉬운 정신적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자신의 평판에 대해 민감해져 스스로가 강하게 의식하는 정도를 넘어 매우 신경이 쓰이게 되기 쉽다. 불안한 마음에 직접 확인을 받으려다가 상대를 의심하는 것처럼 되어 도리어 이미지에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특히나 장애 특성으로 의사소통이 서툴 경우도 많다. 자신의 평가가 안 좋았을 거라 지레짐작한 상태(그런 짐작은 어느 정도 사실일 때도 있으나, 생각하던 것보단 한참 별거 아니었을 때가 많다)에서 한곳에 오래 소속되지 못하고 다른 곳에 갈 때 이제 다시 0의 이미지로부터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스스로는 자신의 가까운 미래 평판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만 가득해 지기 십상이다. 정신적 장애인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으나, 나는 어릴 적에 '책 많이 읽은 것 같고 상식이 풍부하다', '똑똑함을 넘어 천재성 있는 아이다' 같은 말을 들어가며 우수한 학업성적을 받고 좋은 평판을 받아본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대접을 받는 '달달한 맛'을 일찍이 알기도 했었다. 이런 특성들이 직접적으로 정신장애에 취약한 기질과 얼마나 연관되는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정신장애와 관련해 여러 맥락으로 어려울 때 상황을 개선시킬 나의 무의식 속 현실감각에는 좋지 않게 작용한 부분도 많고, 그러면서도 그렇기에 나부터도 계속 기대를 걸고 삶을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된 그런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흥미나 적성에 따른 편차도 컸고, 지속적으로 성실한 행동력을 유지하기 힘들고 컨디션 기복이 심해 ‘불성실한 영재’ 소리를 듣던 중에 정서적으로는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끝내 나는 주변의 과하게 높은 기대를 받다가 크게 실망시키는 기대치 미만의 아이가 되어 무너지기도 했었다.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배경의 차이, 정도의 차이 등은 있겠으나 성인기가 되어서도 평행이론처럼 반복되고 만다. 3년 전 직업학교의 코딩 수업에서 첫 두어 달은 다른 수강생들의 질문을 받아줄 정도로 앞서감을 즐겼는데 결과는 나 혼자 과정 탈락이었듯이 말이다. 많은 정신적 장애인들이 차별을 받는 위치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평판에 대해 과하게 의식하게 되고, 완벽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해서 실수를 저지르면 치명적인 손실로 여겨져 두고두고 떠오르고 이번 자리에선 틀려버렸다고 여기게 된다. 관련된 사람을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소통을 하면 마이너스일 텐데 안 하면 적어도 0이라고 여기고(이 부분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옛말도 잘못하지 않았나 싶다), 주변의 인간관계가 어렵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어려운 상태가 익숙해지고 만다. 우리들을 위해 말할 수 있는 건, 앞서 말한 예시와 같이 이미 실패했단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믿지 못해 자신을 과하게 믿는’ 무의식에 잡혀버려 이미 틀렸다 싶은 건 폐기하고, 최선의 컨디션과 잠재력을 발휘해 단호한 마음가짐으로 다른 걸 0에서부터 완벽히 만회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은 결국 실패 시의 수위 높은 자학, 자기비하로 이어지고, 평판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다 안정적인 이어감을 위해서는 조금 어긋나도 자기 자신이 부정적인 결과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가짐을 긍정하고 정신적 특성을 긍정하며, 그것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순도 100% 완벽이라는 오류에 빠지지 말자.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더욱 더 스스로 바라던 자기 자신에 가까워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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